[취재수첩] 최저임금 논의에서 또 배제된 영세 소상공인

입력 2023-06-29 17:31   수정 2023-06-30 00:21

“새벽부터 아침밥도 못 먹고 출발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면 영세 자영업자의 목소리가 조금이나마 전해질 수 있을까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수백 명의 소상공인이 젖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누군가는 목이 터지라고 구호를 외치고, 누군가는 단상에 올라 ‘최저임금 동결, 차등 지급, 소상공인 살려내라’고 핏대를 올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뒤에 담긴 자영업자의 사연은 다양했다. 광주에서 35년 넘게 과자점을 운영해온 A씨는 “20~30년간 제과업에 종사하며 기술을 갖춘 이들도 가게 운영을 포기한다”며 “과자가게 문을 닫고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2년 전부터 인천에 양식 레스토랑을 연 B씨는 “너무 오른 인건비 탓에 매출이 나쁘지 않은 달에도 적자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호소했다.

노동계에선 흔히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경영인·사업주를 ‘악덕’이나 ‘냉혈한’으로 묘사하기 일쑤다. 온라인상에선 “시급 1만원도 못 줄 거면 문을 닫아라”는 비아냥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기자가 만난 이들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람 냄새나는 이웃이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게 처음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종업원에게 넉넉하게 임금을 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전형적인 을(乙)이기도 했다.

이들이 공통으로 내뱉는 주장은 저마다의 사정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정해 달라는 것이다. 획일적인, 무자비한 적용을 지양하고 업종별로, 가게별로, 노동 강도별로, 숙련도별로 다른 것을 인정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전해질 기미가 없다.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는 연례행사처럼 파행만 거듭하고 있다. 노동계는 관점의 차이를 좁힐 의사가 조금도 없다는 듯,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26.9% 오른 시급 1만2210원을 요구했다.

업종별 구분 적용을 해 달라는 요구는 기초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차이가 큰데도 동일한 임금을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지속될 수도 없다”는 소상공인의 요구는 또다시 공허한 외침이 될 모양이다. 언제까지 소상공인은 투명인간처럼 여겨지는 ‘을 중의 을’로 남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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